[분석+] 가상화폐 공시 첫 도입…불성실 공시하면 '상장 폐지'까지

입력 2019-05-25 10:16   수정 2019-05-25 12:59

투자자들이 꼭 알아야 할 가상화폐 공시 시스템 분석
건전성이 경쟁력 돼...”가치 기반 투자 가능해진다”



묻지마 투기 일색이던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이 큰 전환기를 맞았다. 23일 빗썸·코빗·고팍스·CPDAX 등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처음으로 ‘전자 공시’ 시스템을 도입한 것.

거래소들은 블록체인 공시 플랫폼 기업 크로스앵글이 개발한 전자공시 시스템 ‘쟁글(Xangle)’을 상장 심사 등에 공식적인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 과연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한경닷컴이 투자자들이 꼭 알아야 할 ‘암호화폐 공시 시스템 핵심 포인트’들을 분석했다.

◆정보 검증은 어떻게?...“불성실 공시 하면 패널티 적용하는 사후 검증”

쟁글에 올라오는 공시 정보는 사전 검증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정보의 진위 여부를 사전 검증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검증 참여자들이 정보를 악용하는 등의 더 큰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식시장의 전자공시 시스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대신 쟁글은 ‘사후 검증’형태로 지속적인 실사 및 검증을 거치며 불성실 공시 여부를 파악할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성실한 공시를 한 기업에게는 이익을, 불성실하게 공시를 한 기업에게는 패널티를 준다.

예컨대 지속적으로 성실 공시를 한 기업에게는 해당 기업이 꾸준하게 성실한 공시를 해왔음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을 달아 주는 식이다. 반대로 불성실 공시를 하는 경우 거래소 상장폐지 등의 막대한 불이익이 따른다.

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투자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반드시 공시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요 구성원이 변경되는 경우 어떤 구성원이 교체되었는지, 해당 구성원의 약력은 어떠 한지 등을 공시 하는 식이다. 프로젝트들은 반드시 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거래소와 크로스앵글은 해당 프로젝트들이 상장 유지에 적합한 기준을 만족하는지의 여부를 수시로 검증한다.

상장 유지·상장 폐지 심사 과정은 유가 증권시장의 기준을 참고해 양적평가와 질적평가를 동시에 진행한다.

양적평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량과 시가총액 등이 유지되는지를 평가한다. 질적 평가는 △상위 토큰 홀더들의 지분이 분산되어 있는지 △불성실 공시를 하지는 않았는지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펀더멘탈이 양호한지 등을 체크한다.

◆'발행'에만 집중해온 업계, 신뢰 잃어... “시장 시스템 구조화 선행 돼야”

암호화폐에 조금이라도 투자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과연 ICO(암호화폐공개) 뒤에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암호화폐 발행 업체들이 ICO이후 유명무실 해지거나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쉽게 발생한다.

즉, ‘ICO 사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업체의 자율적인 의지에 기대 돌아가는 미성숙한 시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유독 ‘가치투자’라는 말 자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블록체인 기반 가치를 만들어내던 몇 안되는 기업들은 비즈니스 진척이 있어도 누구도 이런 부분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고통을 받아왔다.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성실하게 개발하는 것 보다 당장 돈을 써가며 암호화폐 가격 상승을 만들어낼 ‘쇼’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됐다.


거래소 사업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다. 일반적인 증권시장의 경우 거래는 거래소에서, 기업 정보는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받는 ‘분리된 구조’로 되어 있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의 경우 정보를 만들어내는 당사자인 거래소나 프로젝트가 자율적으로 원하는 만큼만 공지를 하는 형태였다. 이 역시도 전혀 구조화 되어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보의 왜곡 가능성이 높아지는 형태가 되었고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개되는 정보들은 정보제공자의 입맛대로 짜집기 된 형태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와 거래소 사이에서 정보를 빨리 캐내서 먼저 매수하는 사람만이 돈을 버는 구조가 됐다.

김준우 크로스앵글 대표는 이러한 문제점에서 출발해 증권 시장 수준의 구조화를 이룩하고 싶어 쟁글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코인충, 투기꾼이라고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원래 타고난 투기꾼이라서 이렇게 투자를 할까요? 아닙니다. 제 주변만 봐도 멀쩡한 직장을 다니고 굉장히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대해서 만큼은 이렇게 투자를 합니다.

정상적인 투자를 할 수 없는, 정보가 없는 시장이기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보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공시를 하게 되면 시장도 이성적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장 시스템이 먼저 증권 시장 수준으로 구조화가 되어야 비로소 기관 진입이나 정부 규제 등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가격 방어’에만 치중해야 했던 프로젝트들... “이제는 장기 비전이 경쟁력이다”

당장 전자 공시의 도입으로 인해 가장 많이 변할 부분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경영 방식과 투자자들의 투자 문화다.

‘가격 방어’에만 치중해야 했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이제 공시 자료가 쌓일 것을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투자자들도 찌라시에만 의존하던 투자 방식을 벗어나 수시로 공시 자료를 확인하며 ‘근거 있는’ 투자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난 3월부터 2개월째 쟁글을 통해 공시를 해온 국내 암호화폐 기업 코스모체인의 김주용 이사는 전자 공시가 도입돼 프로젝트-투자자간 신뢰 부족으로 인해 발생했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절감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수 있다고 짚었다.

“프로젝트가 외부 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부작용들이 있습니다. 시세와 직결되는 행위다 보니 좋은 의도에서 자세한 설명을 드린 것이 시장 교란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죠.

특정 정보의 신뢰성을 증명하라는 이슈가 생겼을 때는 비밀유지계약서(NDA) 때문에 제대로 설명을 못해 오해를 사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면에 제 3의 기관인 크로스앵글을 거쳐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정보의 검증이 가능해집니다. 공시한 정보가 거짓일 경우 프로젝트가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점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도 신뢰가 증가하죠. 이에 프로젝트-투자자간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장기적 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민간 기업이 공시를 한다고? “증권 시장 역사 속에 답이 있다”

크로스앵글은 정부 기관이나 국제 단체 등이 아닌 엄연히 법인 형태의 기업이다. 금융권, IT(정보기술), 벤처캐피털 출신의 전문가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여기서 과연 민간 기업에 공시를 맡겨도 되느냐는 의문이 따른다. 이에 김준우 크로스앵글 대표는 “증권 시장 역사 속에 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기업이 주식이란 형태로 증권 발행을 하게 되었을 때의 역사를 살펴봤더니 그곳에 답이 있었습니다. 당시 증권 시장을 주도하던 사기업 J.P 모건이 금융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혼란 속에서 민간 주도로 규정을 만들어 나갔죠.

이에 ‘투명하게 경영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기업과 ‘합당한 근거에 의한 투자를 하고싶다’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형성되며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증권 시장 형태가 나왔습니다. 이후 1934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창설되며 비로소 정부 주도의 관리 체계가 형성이 됩니다.”

김 대표는 이어"암호화폐 시장은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다보니 증권시장보다도 더욱 더 특정 국가의 규제로 다루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이에 업계가 먼저 나서서 먼저 민간 단에서 최적화 과정을 거친 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면 정부 규제 기관들이나 기존 금융 시장 플레이어들의 진입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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